이번엔 최근 개봉한 영화 <하트맨>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 "어? <히트맨> 후속인가?" 싶으셨을 거예요. 맞아요,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 찍으면 '남'이 된다더니, '히'에 점 하나 찍어 '하트'를 만든 그 제목 말이죠.
사실 <히트맨>의 감독과 주연 배우가 다시 뭉쳤으니 얄팍한 마케팅 아니냐는 쓴소리도 나오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난 지금 제 마음은 조금 다릅니다. 특히 8살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시선에서 본 <하트맨>은 단순한 코미디 그 이상, 가슴 한구석을 아리게 만드는 묘한 설득력이 있는 작품이었거든요.

"삼촌!"이라고 부르는 아이의 뒷모습
영화의 설정은 이렇습니다. 주인공 성민(권상우 분)은 첫사랑 보나(문채원 분)를 다시 만나 결실을 맺으려 하지만, 하필 보나는 '애 있는 남자'라면 질색을 하는 사람입니다. 결국 성민은 딸 소영이를 조카라고 속이는 철없는 거짓말 소동극을 시작하죠.
극 중 8살 딸 소영이가 아빠의 당황한 기색을 눈치채고 먼저 "삼촌!"이라 부르며 상황을 수습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 순간 참아왔던 웃음과 동시에 울컥함이 밀려왔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가끔 부모보다 훨씬 어른스럽게 우리의 감정을 살핍니다. 서투른 부모의 세계를 지켜주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낮추는 아이의 마음... 그게 얼마나 크고 깊은지 알기에 가슴이 시큰했습니다.
저 역시 어린 시절의 저를 묵묵히 지켜봐 주던 저희 부모님의 마음, 그리고 이제는 제가 아이의 든든한 보호막이 되어주려 고군분투하는 현재의 제 모습이 영화 속 소동극과 겹쳐 보이더군요.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 그리고 결핍
저는 집에서는 엄마지만, 밖에서는 회사를 다니는 직장인입니다. 사회인으로서, 또 엄마로서 늘 완벽한 모습만 보여주려 애썼던 것 같아요. 가끔은 내 안의 결핍이나 서툰 모습을 숨기고 싶을 때도 있었죠. 영화 속 성민이 사랑을 얻기 위해 '아빠'라는 정체성을 잠시 지웠던 것처럼요.
하지만 영화는 말해줍니다. 사랑을 얻기 위해 필요한 건 화려한 포장지가 아니라, **'가장 소중한 것을 당당하게 드러내는 용기'**라고요. 내 아이의 손을 잡고 세상 앞에 나서는 그 당연한 순간이, 그 어떤 성공보다 빛나는 진짜 '하트맨'의 모습이라는 걸 깨닫게 해줍니다.
마케팅이 숨긴 보석, 배우 김서훈
이 영화에서 꼭 칭찬하고 싶은 건 성민의 딸 소영 역을 맡은 김서훈 양의 연기입니다. 촬영 당시 초등학교 저학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빠를 위해 정체를 숨기면서도 사랑은 돌아오는 것임을 보여주는 그 천연덕스러운 연기는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사실 포스터나 예고편에서는 로맨틱 코미디 색깔만 강조하느라 이 아이의 비중을 숨긴 것 같은데, 이건 정말 큰 오판이라고 생각해요. 박지환, 표지훈 씨 같은 베테랑 배우들 사이에서도 김서훈 양의 존재감은 단연 독보적이었거든요. 촬영 후 5년이나 지나 개봉하는 바람에 아이가 훌쩍 커버려 홍보가 조심스러웠을 수도 있겠지만, 영화 안에서의 소영이는 그 자체로 완벽했습니다.
권상우와 문채원, 그리고 뜻밖의 담백함
물론 초반엔 <히트맨 2>의 악몽이 떠오르는 촌스럽고 유치한 코미디가 나옵니다. 록밴드 리더 시절의 과한 분장을 보며 "아, 나 또 낚인 건가?" 자책하기도 했죠. 하지만 이 고비만 넘기면 권상우 씨의 진심 어린 연기와 문채원 씨의 폭발적인 매력이 극을 이끕니다. 특히 문채원 씨는 "애 있는 남자가 싫다"는 그 설정조차 납득하게 만들 정도로 치명적인 분위기를 뿜어냅니다.
또 하나 놀라운 점은 한국 영화의 고질병인 '신파'를 단호하게 거절했다는 것입니다. 해피엔딩이든 새드엔딩이든 관객의 눈물샘을 억지로 짜낼 법한 타이밍에도, 영화는 마지막까지 잔잔한 물결을 유지합니다. 억지 눈물이 아닌,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극장을 나설 수 있게 해준 감독의 연출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가볍게 웃으러 보기 시작한 영화이지만 끝난 후에는 우리 아이의 손을 한 번 더 꼭 쥐게 만드는 마법 같은 영화였습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아이에게 속삭였습니다. "엄마가 너의 존재를 숨기는 일은 세상 그 무엇을 위해서라도 절대 없을 거야"라고요.
<하트맨>은 세상 모든 서투른 부모들에게 건네는 유쾌하고 따뜻한 위로입니다. 삶의 무게에 치여 가끔은 내가 누구인지, 무엇이 가장 소중한지 잊고 지내는 분들이 있다면 이 영화 한 편 어떠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