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태어난 아이를 품에 안겨주며 눈도 마주치지 못한 채 편지 한 장을 건네는 14살 소녀. 책으로 먼저 읽었을 때 저는 그 장면에서 한참 동안 책을 덮지 못했습니다.
영화 트루 마더스는 아이를 낳은 사람과 키운 사람이 다를 때, 우리는 누구를 진짜 엄마라고 부를 수 있는가를 묻는 작품입니다. 쉬운 답을 내놓지 않는다는 점에서 보고 나서도 오래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였습니다.

14살 생모와 난임 부부, 각자의 절박함
이 영화에서 생모 히카리는 겨우 중학교 2학년 나이에 임신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됩니다. 남자친구는 책임을 저버렸고, 부모님은 딸의 고통보다 타인의 시선을 먼저 걱정했습니다. 히카리는 결국 외딴 섬으로 보내져 아이를 낳고, 법적 친권을 포기한 채 집으로 돌아옵니다.
반면 양어머니 사토코 부부는 결혼 후 오랫동안 자연임신을 시도하다 실패한 뒤 보조생식술(ART, Assisted Reproductive Technology)의 과정을 밟게 됩니다. 여기서 ART란 난임 부부가 자연적인 방법으로는 임신이 어려울 때 의학적 시술을 통해 임신을 시도하는 방법으로, 인공수정과 체외수정(시험관 아기)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저도 늦은 나이에 결혼하여 고위험 산모로 분류된 경험이 있다 보니, 사토코가 병원을 오가며 버텨온 그 시간이 얼마나 지치는 일인지 몸으로 압니다. 단순히 아이를 원하는 게 아니라, 그 과정 자체가 여성의 몸과 마음을 얼마나 소진시키는지를 이 영화는 조용히 보여줍니다.
실제로 국내에서도 난임 치료 경험이 있는 기혼 여성의 비율은 꾸준히 늘고 있으며, 정서적 소진과 부부 갈등이 주요 부작용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출처: 보건복지부).
히카리가 아이를 입양보내고 5년 뒤 사토코 부부를 찾아왔을 때, 부부는 그녀를 알아보지 못하거나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생모일 리 없다"는 말. 저는 그 순간이 히카리에게는 단순한 부정이 아니라, 자신이 살아온 인생 전체가 지워지는 느낌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연과 도시, 그리고 공동 양육의 시선
이 영화의 연출에서 인상 깊었던 건 공간을 상징으로 사용하는 방식입니다. 감독은 히카리가 머무는 공간에는 자연 풍경을, 사토코 부부의 생활에는 도시 풍경을 반복적으로 대비시킵니다.
이 기법은 영화 비평에서 시각적 모티프(Visual Motif)라고 부릅니다. 시각적 모티프란 특정 이미지나 색감, 장소를 반복 배치하여 관객에게 무의식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영화적 서술 장치입니다. 이 작품에서 자연은 본능적이고 생물학적인 모성을, 도시는 사회적 계약과 선택으로 형성된 가족을 상징하죠.
그런데 감독은 이 둘을 대립 구도로 끝내지 않습니다. 히카리의 공간과 사토코의 공간 모두에 바다가 등장합니다. 감독은 바다라는 공통 매개를 통해 두 사람 모두 진짜 부모라는 시각, 즉 공동 양육(Co-parenting)의 가능성을 암시합니다. 공동 양육이란 생물학적 부모와 양육자가 서로를 배타적으로 부정하지 않고 아이를 중심으로 각자의 역할을 인정하는 방식을 뜻합니다.
이 영화가 단순한 입양 가족 이야기를 넘어서는 지점이 바로 여기입니다. 히카리를 악인으로 만들지 않고, 사토코를 완벽한 엄마로 신화화하지도 않습니다. 각자의 진심이 충돌하면서도 공존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방식이 저는 굉장히 좋았습니다.
이 작품은 2020년 칸 국제영화제 공식 초청작으로, 칸의 선택은 이 영화가 단지 감성적인 드라마가 아니라 사회 구조적인 질문을 담은 작품임을 방증합니다(출처: 칸 국제영화제).
히카리의 5년, 그리고 부모 됨의 의미
제가 이 작품에서 가장 오래 생각하게 된 건 히카리의 5년이었습니다. 아이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학업에 적응하지 못하고, 가출하다시피 상경해서 신문 배달로 생계를 이어갑니다. 그나마 의지했던 친구마저 사채 빚을 남기고 잠적하면서, 히카리는 완전히 홀로 남겨집니다.
이 과정을 읽으면서 저는 생각이 하나 들었습니다. 히카리가 자유롭고 반항적으로 보여도, 결국 그 나이에 그 상황에서 올바른 판단을 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어른의 보호 아래 있어야 할 나이에 홀로 감당하기엔 너무 무거운 책임들이었습니다. 히카리의 인생을 보면서 제 안에서 작은 깨달음이 생겼습니다. 보호자의 말을 듣는다는 게 단순한 복종이 아니라, 아직 세상을 다 알지 못하는 시간 동안의 안전망이라는 것이요.
트루 마더스에서 주목해야 할 또 다른 개념은 법적 친권 포기(Relinquishment of Parental Rights)입니다. 이는 생모가 법적으로 아이와의 모든 관계를 종료하는 절차로, 한번 이루어지면 번복이 어렵습니다. 히카리는 이 절차를 거쳤지만 5년이 지나도 아사토를 잊지 못했습니다. 법이 관계를 끊어도, 감정은 끊어지지 않는다는 것. 그게 이 영화가 말하려는 핵심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저는 우리 아이가 저희 부부에게 와준 것에 대해 다시 한번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임신과 출산이 당연한 일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사토코처럼 그 과정을 간절히 기다려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면 그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새삼 실감하게 됩니다.
이 영화를 통해 생각해볼 핵심 질문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아이를 낳은 것과 키우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엄마'에 가까운가
- 법적 관계가 끝난 뒤에도 감정적 책임은 남는가
- 가족이란 혈연으로 정의되는가, 함께한 시간으로 정의되는가
트루 마더스는 이 세 질문에 어느 하나의 정답도 내놓지 않습니다. 그 대신 각 인물의 시간을 충분히 보여주면서 관람자 스스로 생각하게 만듭니다.
책과 영화를 모두 경험해보니, 책에서는 히카리의 내면이 훨씬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고, 영화는 시각적 상징이 강해 두 매체가 서로를 보완하는 느낌이었습니다. 가능하다면 책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보시길 권합니다. 히카리가 편지를 건네는 장면의 무게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보고 나면 한동안은 주변의 가족 관계를 다시 들여다보게 됩니다. '나는 어떤 시간을 쌓아서 이 관계를 가족이라 부르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쉽게 사라지지 않더군요. 그 질문이 불편하지 않고 따뜻하게 느껴진다면, 이 영화를 잘 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