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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맨 (일상 히어로, 인간미, 가족애)

by 핑크카샤 2026. 2. 19.

 

영화 속 슈퍼맨은 정말 하늘을 날아야만 영웅일까요? 제임스 건의 <슈퍼맨>을 보고 극장을 나서며 문득 SNS에서 본 영상이 떠올랐습니다. "우리 삼촌이 슈퍼맨이에요"라고 말한 아이를 선생님이 거짓말은 나쁜거라며 꾸짖었지만, 실제 슈퍼맨을 연기했던 배우가 아이의 손을 잡고 어린이집에 등원하는 모습이 공개되며 반전을 선사했던 그 영상 말입니다. 저 역시 그 영상을 보며 "나에게도 저런 든든한 슈퍼맨이 있었으면"이라는 철없는 부러움을 품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이번 영화를 관람하며 깨달은 건, 망토를 휘두르는 화려한 영웅보다 내 곁을 묵묵히 지키는 '일상의 슈퍼맨'들이 훨씬 위대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평범한 이웃으로 돌아온 슈퍼맨의 반가움

제임스 건의 슈퍼맨은 과거 잭 스나이더가 그려낸 초월적 신(神)의 이미지를 완전히 벗어던졌습니다. 메타휴먼(Metahuman)이란 초능력을 가진 인간형 존재를 뜻하는데, 여기서 메타휴먼이란 일반 인간을 초월한 힘을 지녔지만 여전히 인간성을 간직한 존재를 의미합니다(출처: DC Comics 공식 설정). 이번 영화 속 클라크 켄트는 핫도그 트럭 앞에서 몇 개 얻어먹을 정도로 친근한 동네 형, 삼촌 같은 존재로 그려집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며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어린 시절, 저에게도 슈퍼맨이 있었습니다. 따뜻한 밥상을 차려주며 "괜찮다"고 다독여주던 부모님이 바로 저의 진짜 히어로였습니다. 영화 속 켄트 부부 역시 시골에서 도시로 취업한 아들을 늘 걱정하는 평범한 부모의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영화적인 멋진 대사 대신, 좌절하고 실패하는 아들 클라크를 평범한 말로 위로해 주는 장면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가장 큰 매력은 슈퍼맨의 인간미를 부각시킨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인간미란 완벽하지 않고 실수하며 때로는 무너지지만, 그 과정에서 성장하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뜻합니다. 129분이라는 러닝타임이 전혀 길게 느껴지지 않을 만큼 몰입도가 높았고, 오히려 더 보고 싶다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제임스 건은 장황한 기원 스토리 대신 짧은 서론으로 본론에 바로 진입하며, 영화 중간중간 클라크의 과거를 자연스럽게 녹여내 관객이 상상하게 만드는 연출력을 보여줍니다.

 

예전에 회사 일이 끝나고 피로한 몸으로 퇴근해서 집에 와 그냥 쓰러지고 싶을 때, 웃는 얼굴로 저를 맞이해 주는 저희 아이를 보고, 꼭 안으니 다시 에너지가 충전되는 듯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존재만으로 제 세상의 빛이 되어주는 게 바로 저희 아이인데, 제 진정한 슈퍼맨입니다. 이때만큼은 저의 진정한 슈퍼맨이었던게 분명하네요. 제가 이런 경험은 조리원 동기 언니들에게 말했더니 정말이냐며 의심을 표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이미 언니들도 저화 같은 경험을 해 보았을 거라 믿어봅니다.

 

따뜻함이 만들어낸 창의적 히어로 서사

이번 영화에서 가장 창의적인 부분은 슈퍼맨의 히트 비전(Heat Vision)이나 화려한 전투씬보다, 그가 건네는 따뜻한 미소와 짧은 위로에 더 큰 힘을 실어준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히트 비전이란 눈에서 고열의 레이저 빔을 발사하는 슈퍼맨의 대표적인 공격 능력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제임스 건은 이런 화려한 능력보다 친절의 전복적 힘을 강조합니다. 자극적인 폭력과 갈등이 난무하는 히어로 장르에서, 다정함이 결코 약함이 아니며 오히려 가장 큰 용기임을 역설하는 것입니다.

 

특히 강아지 크립토와 어린아이를 구하는 장면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데, 이는 단순히 귀여운 장면이 아닙니다. 아이는 어른들의 보호와 사랑 속에서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는 메시지를 가장 감동적으로 전달하는 장면입니다. 렉스 루터 때문에 주머니 우주(Phantom Zone)에 문제가 생기며 지구가 사라질 위기에 처할 때도, 많은 시민들이 아이부터 챙기고 소방관이 아이를 안고 뛰는 모습, 강아지를 데리고 차에 탑승하는 장면들이 나옵니다. 여기서 주머니 우주란 크립톤 문명이 만든 차원 감옥으로, 범죄자들을 가두는 공간을 뜻합니다(출처: DC Extended Universe Wiki).

 

영화는 어른인 우리가 다음 세대에 대한 책임과 보살핌을 다해야 한다는 따뜻한 메시지를 전합니다. 실제로 2024년 기준 국내 1인 가구 비율은 34.5%에 달하며(출처: 통계청), 사회적 고립감이 증가하는 현실 속에서 이런 '연대'와 '돌봄'의 메시지는 더욱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저 역시 부모가 되고 나서야 과거 부모님이 저를 얼마나 든든하게 지켜주셨는지 깨달았습니다. 남들이 믿어주지 않아도 조카의 손을 잡고 어린이집 문을 당당히 열어주었던 그 삼촌처럼, 저도 아이가 어떤 풍파를 겪든 언제나 "엄마가 네 편이야"라고 말해줄 수 있는 다정한 슈퍼맨이 되기를 꿈꿉니다.

저스티스 갱과 함께 만드는 새로운 연대

제임스 건은 슈퍼맨의 원맨쇼를 지양하고 저스티스 갱(Justice League)과의 팀업을 통해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냅니다. 여기서 저스티스 갱이란 DC 유니버스의 히어로들이 모여 지구를 지키는 팀을 의미하며, 이번 영화에는 그린 랜턴, 미스터 테리픽, 호크걸이 등장합니다. 특히 미스터 테리픽은 렉스 루터의 부하들을 춤추듯 제압하는 우아한 몸놀림으로 매력적인 캐릭터성을 보여줍니다. 그의 도움으로 슈퍼맨이 주머니 우주에서 탈출하는 장면은, 혼자서는 불가능했을 일을 동료와 함께 이뤄낸다는 의미에서 큰 울림을 줍니다.

 

영화 속 악당 울트라맨(Ultraman)은 슈퍼맨의 DNA를 복제해 만든 클론으로 등장합니다. 잭 스나이더였다면 이 설정만으로 두 시간짜리 영화를 만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임스 건은 짧고 굵게 울트라맨의 정체를 밝히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진부한 서사를 덜어내고 영화의 흐름을 끊지 않는 이 센스가 저는 정말 마음에 들었습니다. 게다가 영화 말미에 슈퍼맨의 사촌 슈퍼걸(Supergirl)이 등장하며, 향후 단독 영화와 콤비 플레이를 기대하게 만듭니다. 밀리 엘코이가 연기한 슈퍼걸은 하우스 오브 드래곤에서의 이미지와 달리 밝고 활기찬 모습으로 잘 어울렸습니다.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명확합니다. "당신의 가슴속에는 타인을 향한 '태양'이 떠 있나요?" 하늘을 나는 화려한 비행보다 중요한 것은, 땅 위를 걷는 평범한 이들의 눈높이에서 함께 슬퍼하고 기뻐하는 마음입니다. 영화 속 슈퍼맨은 SNS를 통해 하루아침에 '인간을 지배하려는 악당'으로 거짓 선동당하기도 합니다. 거짓 정보와 선동 댓글 부대로 국민을 혼란시키는 대중 매체와 SNS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장면은, 현대 사회를 정확히 꼬집는 날카로운 시선이었습니다.

 

결국 제임스 건은 이 영화를 통해 우리가 슈퍼맨을 사랑하는 진짜 이유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언급했습니다. 저는 그 메시지에 깊이 공감했고, 아낌없는 박수를 보냅니다. 슈퍼맨의 초월적인 힘을 강조하는 구태함을 벗어나, 이웃과 평범하게 관계를 맺고 연인과도 실패하며 영웅으로서도 넘어지지만, 그 실패와 좌절을 통해 눈물 흘리고 다시 일어서는 가장 인간다운 모습이야말로 진정한 슈퍼맨의 강함이라는 것을 이 영화는 증명합니다.

 

화려한 초능력보다 강력한 것은 결국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변치 않는 진심'입니다. 영화를 보고 나오며 저는 다짐했습니다. 우리 아이에게 가장 단단한 하늘이 되어주고, 어떤 순간에도 "엄마가 네 편이야"라고 말해줄 수 있는 다정한 슈퍼맨이 되겠다고 말입니다. 제임스 건의 슈퍼맨은 1970~80년대 크리스토퍼 리브의 슈퍼맨이 있다면, 2000년대 이후 슈퍼맨은 이래야 한다는 시대에 맞는 상상력을 완벽하게 구현한 작품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정말 사랑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y5h0xuda4f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