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묘를 보고 나서 한동안 찜찜한 기분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재밌었냐고 물으면 재밌었다고 말할 수 있는데, 그러면서도 어딘가 아쉽다는 감정이 동시에 드는 영화였거든요.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보기 전에는 이 영화의 소재 자체가 조금 당황스러웠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땅에 묻는 게 우리 문화인데, 그걸 다시 파낸다는 발상이 낯설게 느껴졌거든요. 서양 드라마에서 무덤을 파는 장면이 나오는 것과는 뭔가 다른 무게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영화를 보고 나니, 그 낯섦이 오히려 이 영화의 힘이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흙에서 시작해서 역사로 내려가는 영화
장재현 감독의 가장 큰 강점은 세상에 이유 없이 존재하는 것은 없다는 태도로 이야기를 설계한다는 점입니다. 파묘도 마찬가지예요. 그냥 부자가 아니라 친일 행적으로 부를 쌓은 집안이고, 그냥 산에 여우가 사는 게 아니라 그 땅이 음지인 데다 일본 음양사와 연관이 있기 때문에 여우가 등장하는 겁니다. 모든 것에 이유가 있으니 이야기를 따라가는 맛이 있어요.
생각해보면 파묘라는 행위 자체가 굉장히 독특한 소재입니다. 묫자리를 옮긴다는 것, 땅 아래 묻힌 것을 다시 꺼낸다는 것. 이게 단순히 귀신 이야기가 아니라 겹겹이 쌓인 역사의 상처를 들춰내는 과정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영리합니다. 위에서 아래로 파고 내려갈수록 더 오래된 것, 더 무거운 것이 나온다는 설계가 오컬트 장르의 공포와 역사적 무게감을 동시에 끌어안습니다.
인물 소개 방식도 인상적이었습니다. 화림과 봉길이 비행기 비즈니스석에 앉아 있는 장면 하나로, 이 두 사람이 무당이지만 우리가 떠올리는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세련된 인물들이라는 걸 단번에 보여줍니다. 저는 무속인이라는 직업 자체를 존중하는 편입니다. 그들이 하는 일도 분명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인지 이 영화가 무속을 신비롭고 이국적인 볼거리로만 소비하지 않고, 하나의 전문직으로 그려내는 방식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반면 상덕은 처음 등장하자마자 흙을 만지고, 그 흙을 맛봅니다. 대사 한 줄 없이 이 캐릭터가 어떤 사람인지를 행동 하나로 끝냅니다. 향긋하네, 라는 대사 한 마디로 보통 사람과는 전혀 다른 감각을 가진 인물이라는 것도 함께요. 스토리텔링으로만 분석하다 보면 놓치기 쉬운 부분인데, 이런 장면 하나하나의 구도와 연출을 들여다보면 이 영화가 얼마나 꼼꼼하게 설계됐는지가 보입니다.
굿 장면은 전반부의 하이라이트였습니다. 그리고 이 장면에서 김고은이라는 배우를 처음으로 제대로 본 것 같았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그 전까지는 김고은 배우가 이렇게 강렬한 배우인지 몰랐어요. 섬뜩하고 격정적이면서도 압도적인,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보이는 연기였습니다. 연출자도 이 장면에서 절정에 가까워지는 순간 카메라를 뒤로 빼 풀샷으로 관조하게 만들고, 굿 소리를 서서히 걷어내면서 음악을 깔고 슬로모션을 얹습니다. 몰입했던 관객을 한 발 뒤로 물러서게 하는 이 균형감이, 파묘 전반부의 가장 큰 미덕이라고 생각합니다.
관 아래 또 다른 관이 나오는 순간부터 뭔가 달라졌다
영화 딱 절반이 되는 지점에서 새로운 관이 등장합니다. 저는 이 순간이 파묘에서 첫 번째 균열이 생기는 지점처럼 느껴졌습니다. 줄초상이 날 뻔한 상황을 겪은 팀이, 같은 자리에서 나온 관을 화장터가 아닌 보국사로 옮기는 선택을 합니다. 이야기를 다음 단계로 진행시키기 위한 선택이라는 건 알겠는데, 앞뒤가 잘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면서 처음으로 영화에서 살짝 빠져나오게 됐습니다.
오니가 등장하면서 이 느낌은 더 강해졌습니다. 이전까지 이 영화는 혼령이 거울이나 유리에 흐릿하게 반사되거나, 빙의를 통해서만 인간과 접촉하고, 인간이 문을 열어줘야만 다가올 수 있다는 나름의 규칙을 만들어 놨습니다. 관객도 그 규칙을 받아들이고 영화를 보고 있었는데, 오니가 나타나자마자 그 규칙이 한꺼번에 깨집니다. 다른 규칙, 다른 톤, 거의 다른 영화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어요.
후반부가 더 무섭고 더 자극적이라 좋다는 분들도 있고, 저처럼 전반부의 팽팽한 긴장감이 무너졌다고 느끼는 분들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 맞다 틀리다의 문제는 아닌데, 저는 전반부의 그 균형감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후반부의 변화가 더 크게 아쉽게 느껴졌습니다.
그래도 한 번은 볼 만한 영화다
최민식, 김고은, 유해진, 이도현. 이 넷이 한 화면에 모이는 것만으로도 이미 볼 이유가 충분합니다. 네 사람 모두 자기 캐릭터를 소화하는 방식이 각자 달라서, 같은 장면 안에서 서로 다른 질감이 부딪히는 재미가 있습니다. 특히 이도현 배우는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에서도 눈빛 하나로 장면을 끌고 가는 장면이 짧지만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그리고 김고은. 이 배우가 이렇게 매력적인 배우인지 파묘를 보기 전까지는 몰랐습니다. 화림이라는 캐릭터가 가진 당당함과 서늘함, 그리고 정령 앞에서 완전히 무력해지는 순간까지. 그 폭이 넓은 배우라는 걸 이 영화에서 처음 실감했습니다.
파묘는 스토리만으로 분석하기보다는 구도와 미장센, 빛과 그림자의 설계를 들여다볼 때 더 풍부하게 보이는 영화입니다. 오컬트 장르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이 영화가 흙과 나무와 쇠붙이라는 물리적인 질감으로 공포를 만들어내는 방식은 충분히 인상적입니다. 저는 10점 만점에 7점을 주고 싶은 영화입니다. 아쉬운 만큼 잘 만든, 그래서 더 오래 생각하게 되는 영화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