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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수녀들 해석 (12형상, 엔딩, 구마의식)

by 핑크카샤 2026. 3. 2.

 

수녀가 담배를 피우고 욕을 한다면, 그건 타락일까요 아니면 진짜 구원일까요? 영화 <검은 수녀들>을 보는 내내 제가 계속 떠올렸던 질문입니다. 화려한 액션 대신 고통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수녀들의 모습이, 육아로 지쳐가는 제 일상과 묘하게 겹쳐 보였기 때문입니다. 전작 <검은 사제들>이 보여준 통쾌한 승리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 사랑 하나로 버티는 수녀들의 인내가 훨씬 더 현실적으로 다가왔습니다.

12 형상과 솔로몬의 72 악마, 악령의 정체

영화 초반부터 등장하는 '12형상'이라는 개념이 처음에는 생소했습니다. 자막으로 짧게 설명이 나오긴 했지만, 전작을 보지 않은 관객 입장에서는 "센 귀신이구나" 정도만 짐작할 수 있었죠. 여기서 12 형상이란 솔로몬의 72 악마 중 대장급 12마리를 추린 것을 의미합니다. 솔로몬의 72 악마는 중세 신비학에서 다루는 개념으로, 이스라엘 왕 솔로몬이 신에게 받은 지혜로 봉인한 존재들이라고 전해집니다(출처: 한국민속백과사전).

 

전작에서는 마르바스라는 악마가 등장했습니다. 사자 얼굴을 한 악마로, 변신 능력과 함께 질병을 퍼뜨리는 힘을 가졌다는 설정이었죠. 이번 작품에서도 쥐떼가 대거 등장하고, 송혜교 배우가 "뱀"에서 "쥐떼"로 표현을 바꾸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제 추측으로는 마르바스가 다시 등장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쥐떼는 페스트 같은 질병을 옮기는 매개체로 자주 쓰이니까요.

 

솔직히 영화를 보면서 아쉬웠던 건, 악령이 자기 이름을 말할 때 자막 처리가 없었다는 점입니다. 구마 의식에서 악령의 이름을 밝히는 게 핵심인데, 관객 입장에서는 정확히 무슨 이름인지 알아듣기 어려웠거든요. 영화 설정상 악령의 이름이 밝혀지면 더 이상 그 숙주에 머물 수 없고, 다른 숙주를 찾아 떠나야 합니다. 그래서 유니아 수녀가 마지막에 암에 걸린 자신의 몸에 악령을 가둔 것이죠.

서품 받지 못한 수녀, 유니아의 이름에 담긴 의미

주인공의 세례명이 '유니아'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 감독이 캐릭터 설정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유니아는 로마서 16장 7절에 딱 한 번 등장하는 인물로, 최초의 여성 사도로 해석되기도 하는 이름입니다(출처: 대한성서공회). 여기서 사도란 예수님의 직속 제자를 뜻하는데, 대부분의 사도가 남자였던 점을 생각하면 여성 사도라는 설정 자체가 파격적이었죠.

 

영화 속에서 유니아는 구마 의식을 충분히 해낼 능력을 갖췄음에도, 서품을 받지 못한 수녀라는 이유로 계속 제약을 받습니다. 여기서 서품(敍品)이란 교회 신도 중에서 특별히 선별된 사람에게 수여하는 직분 의식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천주교에는 구마품이라고 해서 귀신을 쫓는 전문 서품이 따로 존재한다고 하더라고요. 유니아는 이 서품을 받지 못했기에, 작품 내내 금기에 도전하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제가 인상 깊었던 건, 유니아가 담배를 피우고 욕을 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수녀복을 입은 사람이 담배를 태우는 모습이 처음에는 낯설었는데요. 전작에서 김윤석 배우가 맡은 김범신 신부도 구마 의식 전에 "한 대 피우고 올라가자"고 했던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영화 설정상 유니아는 김범신 신부의 제자거든요. 스승과 제자가 똑같이 담배를 피운다는 건, 단순히 습관을 넘어서 기존 질서에 순응하지 않는다는 상징처럼 느껴졌습니다.

 

어떤 일을 시도 할때 저도 주변 조언대로 저 자신에게는 안 맞을 때가 있거든요. 그럴 때 저도 유니아처럼 기존 틀을 깨고 제 방식대로 해야겠다는 확신이 들 때가 있습니다. 수녀가 욕을 하고 담배를 피우는 건, 형식보다 본질에 집중한다는 메시지가 아니었을까요.

구마 의식의 도구들과 수중 굿, 엔딩 해석

영화에서 구마 의식에 사용된 도구들도 볼거리였습니다. 프란체스코의 종, 묵주, 향로, 십자가, 거울, 성수, 소금까지 다양한 구마 도구가 등장했죠. 특히 프란체스코의 종은 성 프란체스코가 직접 만든 종으로, 중세 시대부터 귀신을 쫓는 영험한 능력이 있다고 전해집니다. 마지막에 유니아가 악령을 자신의 몸에 가두고 "종소리 세 번만 들려달라"고 부탁했던 장면이 가슴 아팠습니다. 종소리는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구원과 희망을 상징하는 신호였으니까요.

 

가장 충격적이었던 장면은 박수무당이 바닷가에서 수중 굿을 하는 장면이었습니다. <파묘>에서 닭피를 사용한 굿이 인상적이었는데, 이번에는 아예 물속에 집어넣는 업그레이드 버전이더라고요. 전통 굿에서 물은 정화의 힘을 가진 요소로 여겨집니다. 수중에서 하는 굿은 굿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의식이라고 하는데요. 여기서 대살(大煞)이란 큰 액운이나 재앙을 물리친다는 뜻으로, 가장 강한 퇴마 의식을 의미합니다.

 

타로 카드로 4번(황제), 5번(교황), 6번(연인)이 등장했던 것도 의미심장했습니다. 결국 세 사람의 힘이 필요하다는 복선이었고, 마지막에 히든 카드처럼 박수무당이 합류하면서 구마에 성공하죠. 동서양의 엑소시즘을 조합한 시도는 신선했지만, 솔직히 이진욱 배우의 역할이 좀 아쉬웠습니다. 차라리 박수무당 역할과 서로 바꿨으면 더 임팩트가 크지 않았을까 싶더라고요.

 

엔딩에서는 강동원 배우가 등장해서 유니아의 무덤 앞에서 기도하고, 전여빈 배우와 함께 차를 타고 떠나는 장면으로 끝났습니다. 전작 <검은 사제들>의 엔딩곡이었던 '안젤루스'가 다시 흐르면서 반가운 마음이 들었죠. 아마 후속작에서 강동원 배우와 전여빈 배우가 팀을 이뤄 악령을 퇴치하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게 됩니다.

 

<검은 수녀들>은 <검은 사제들>이 열어젖힌 한국형 엑소시즘을 '수직적 권위'에서 '수평적 연대'로 확장한 작품입니다. 전작이 사제라는 공적 직분을 가진 남성들의 전투였다면, 이번 작품은 제도 밖에서 고통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수녀들의 인내를 보여줍니다. 화려한 승리보다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헌신이 얼마나 강력한지, 영화를 보며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가장 연약해 보이는 자들이 가장 거대한 악을 감당해 낸다는 역설, 그것이 바로 이 영화가 완성한 독보적인 성스러움이 아닐까요.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TKL8q0z1iBA